많은 사람들에게 6.25 한국전쟁은 점점 잊혀져 가는 역사적 사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아직까지 그날의 참상을 잊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전투 보급품을 신속하게 공급했던 잊혀진 부대 지게부대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 지게부대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험한 산악지대인 만큼 물자운반에 최악의 지형을 가지고 있었는데, 병력이 부족했던 미군은 원활한 보급을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민간인 인력을 요청했습니다. 전쟁의 승패를 가를수 있는 요소중 하나는 전투 보급품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공포한 긴급명령 제6호 "징발에 고나한 특별 조치령" 에 따라 1950년 7월 26일 각 지역에서 민간인들이 동원되었습니다. 군인 징집 대상연령이 넘은 인력으로 편성되었던 지게부대는 "근무단", "노무단", "보국대" 라는 명칭으로 지어졌지만 다른 군인들과 달리 지게를 지고 전쟁터를 누비는 모습이 많아, 지게부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15세였던 진복균씨의 증언에 따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방 산악지대 고지까지 M1 실탄이 든 철통 2개를 멜빵에 짊어지고 기어오르곤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전투지대에서 불순한 기후와 험난한 지형을 무릅쓰고 자동차 수송이 불가능한 지역으로 보급품을 운반하였고.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은 민간인 수송단은 1951년 7월, 군단 예하의 한국 노무단으로 재편되었습니다.
▼그들은 전투물자가 필요한 모든 전쟁터에서 탄약, 연료, 식량, 보급품 운반 및 진지공사, 부상자, 전사자 후송 등 모든 병참을 담당했고, 최대한 많은 양을 빠르게 나르기 위해 맨몸의 이들이 택한 도구는 바로 지게였습니다.
▼알파벳 A처럼 생긴 지게를 사용한다고 해서 정식 명칭보다 A Frame Army, 지게부대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불렸던 지게부대는 유엔군과 함께 온 전장을 누비며 한국전쟁을 치른 숨은 힘이었습니다. 일부 미군들은 그들을 A특공대라고 불렀습니다.
▼지게부대원들은 매일 10마일(16킬로) 정도 떨어진 고지로 100파운드(45킬로) 정도의 보급품을 운반하고 되돌아왔다고 합니다. 미8군 사령관 제임스 A. 밴플리트는 “만일 이들이 없었다면 최소한 10만 명 정도의 미군병력을 추가로 파병해야만 했을 것"이라며 그들의 활동을 크게 치하했습니다.
▼지게부대는 철모는커녕 흰색 무명바지, 학생복 등 징집당했을 당시에 입었던 옷 그대로의 차림으로 임무를 수행했으며, 눈에 잘 띄는 복장의 노무대원들은 적에게 총알받이로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기붕 전 국방장관에 따르면, "동원된 노무자들의 대우가 제일 나쁘다는 곳을 찾아가보니 부식이라고는 썩은 파, 배추 같은 것, 통조림 1일 7인당 한 개였다"고 했을 만큼 먹을것도 변변치 못했다고 합니다.
▼지게부대의 후신인 주한미군 한국근무단에 따르면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이렇게 동원된 인원은 약 30만 명으로 추정되며, 그 30여만 명 중 기록에 남은 희생자는 사망자 2,064명, 부상자 4,282명, 실종자 2,448명 등 모두 8,794명입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귀향길에는 종군기장, 징용해제통지서, 열차승차권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6.25전쟁 중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던 지게부대는 지금도 여전히 군번도 계급장도 없이 단순 노동력으로 치부되며 잊혀진 영웅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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