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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전쟁사

최첨단 무장으로 극강의 전투력을 자랑했던 개마부대

역사적으로 여러사람이 알다시피 고구려 사직 705년이 이어지는 동안 중국에서는 한나라부터 당나라까지 많은 나라들이 멸망하기를 거듭했습니다. 그렇기에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에 대한 얘기는 더더욱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중국이 주장하는데로 고구려가 중국을 상대로 지방정권으로 예속된 나라였다면 태조 추모태왕 때부터 한나라를 이 땅에서 축출하고 후대에 이르러 연나라와 수나라를 멸망시키는 우를 범할 리 없었을 것이죠.


고구려는 고조선의 영광을 이어받은 당당한 자주 국가였습니다. 외세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중원의 오랑캐를 정복했던 동시대 최강대국이었죠. 고구려가 중국 중원왕조를 상대로 전쟁에서 거듭 승리를 거두고 대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건, 당시 최첨단 무기로 무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고구려의 최첨단 무기는 다름 아닌 주력부대인 개마무사 입니다.. ‘개마’란 기병이 타는 갑옷을 입힌 말을 말하며, 개마를 탄 기병까지 철갑옷을 중무장한 기병을 두고 ‘개마무사’라고 했습니다.


함경도 개마고원은 고구려의 개마무사들이 개마를 타고 달리는 것에서 붙여진 지명입니다. 그런 점에서 개마무사는 한반도에 뿌리를 둔 우리 민족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단어이지만 과거 중국 왕조들에게는 자다가도 몸서리는 치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죠.


말을 탄 기병이 아무리 잘 싸운다고해도 말이 부상당한다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런데 개마는 이를 보완한 최상의 공격무기였습니다. 개마의 머리에는 철판으로 만든 안면갑을 씌우고 말 갑옷은 거의 발목까지 내려왔습니다. 


고구려 개마무사는 5.4미터가 넘는 창을 어깨와 겨드랑이에 밀착하고 개마와 혼연일체가 되어 그 체중을 실어 적 보병을 향해 돌진하면 적군의 대형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가공할 공격력으로 무장한 개마무사의 주된 임무는 적진 돌파와 대형 파괴. 개마부대는 오늘날로 따지면 일종의 기계화 사단으로 당시 적군은 거침 없이 돌진하는 개마부대가 자체적인 방어진으로는 도무지 저지할 수 없는 탱크와도 같았을것 같습니다.


고구려가 주름 잡았던 동북아의 천하는 결코 중국 왕조들의 공세 맞서 수세적인 방어로는 불가능했고 대제국을 영유할 수도 없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는 고구려의 경제력과 철기 문명이 뒷받침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개마무사 5천을 무장시키려면 얼마의 철이 소모됐을까. 개마무사 1인당 말 갑옷 최소한 40킬로그램, 기병의 갑옷 20킬로그램, 기타 무기와 장비 10킬로그램을 무장했다면 최소 70킬로그램의 강철이 소요됩니다. 


5천의 개마무사가 무장하는 강철의 양은 단순 계산해도 350톤. 예비량을 염두에 둔다고 해도 최소 500톤에 달한다. 현대 제철기술로는 500여 톤의 강철은 그다지 많은 양이 아니죠. 하지만 2천여 년 전 이 정도 분량의 철을 생산하고 가공한다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고구려의 국력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개마무사의 강철 갑옷은 가죽 편에 철판을 덧댄 미늘을 가죽 끈으로 이어 붙인 것이다. 투구, 목가리개, 손목과 발목까지 내려덮은 갑옷을 입으면 노출되는 부위는 얼굴과 손뿐이다. 발에도 강철 스파이크가 달린 가죽 장화를 신었습니다. 


동시대 최첨단의 기계화사단과도 같았던 이 개마무사의 위력은 광개토태왕은 드넓은 만주를 호령했고, 당대 동북아 절대 강자의 용감무쌍한 위용으로 중원의 오랑캐들을 매일 밤 공포심에 가슴 졸이게 했었습니다. 개마무사의 실체에서 드러나듯 고구려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강력한 군사 국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