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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레저

점점 불러오는 나의 배... 이러다 산부인과 가나

요즘 여직원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차장님은요, 뒤에서 보면 학생인데 앞에서 보면 완전 아저씨예요."

청바지에 남방 하나 걸치고 있으니 뒤에서 보면 정말 학생 같다. 좀 마른 체형에 작은 키를 갖고 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난 전형적인 마른 비만 타입. 배만 나왔다. 내가 봐도 8개월쯤 된 임산부 같다. 물론 얼굴이나 목 주위도 조금 통통하긴 하나 끝을 모르고 치솟는 복부를 볼 때면 죄책감마저 든다.

작은 키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가 컸던 어린 시절

어릴 적부터 키가 작고 너무 말라서 사람 구실 제대로 하겠냐는 말을 귀에 딱지가 들어앉을 정도로 들었던 나,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며 친구들이 보여준 가공할 정도의 성장력은 나에게 너무 높은 벽이었다. 한 학년 올라간다거나 새로운 학교에 들어서게 되었을 때 나를 압도하는 것은 내 머리보다 두 개는 높은 그들의 키였다. 보통 학급의 번호를 매길 때 키순으로 매기는데 여지없이 나는 맨 앞쪽으로 밀려났다.

내성적인 성향의 내 자신감은 작은 키만큼이나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주눅 들고 눈치 보던 학창시절, 지나보면 사실 내가 키 작다는 것에 대해 놀리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사소한 언행에도 조금씩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10대와 20대 시절 신체의 차이에서 오는 무거움은 나에게 낮은 자존감을 던져줬다.

대학교 다닐 때, 충격이라면 충격이랄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학교에 헌혈차량이 들어왔다. 많은 학생들이 헌혈하러 버스로 올라갔고 나와 친구도 좋은 일하자면 버스 안으로 올라갔다. 친구가 먼저 혈압과 간단한 설문을 작성하고 내 차례가 되었다. 그때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면 간호사가 말했다.

"혹시 몸무게가 어떻게 되세요?"
"글쎄요, 아마 50kg 조금 넘을 거예요."

순간 난 당황했다.

"죄송한데요. 여기 몸무게 한 번 재 주실래요?"
"네……. 그러죠 뭐."

체중계에 올라갔다. 바늘이 49kg에서 멈췄다. 그때 내 머리를 치던 간호사의 말.

"저, 키에 비해 몸무게가 너무 안 나가서 헌혈을 하실 수 없으세요. 죄송합니다."

내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 날 쳐다보고 있었고, 차 안의 여대생들도 나를 보며 웃음을 참느라 잠시 소란스러웠다. 난 창피해서 얼른 내렸다. 나 자신을 원망하며 친구가 헌혈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키에 비해 몸무게가 너무 안 나간다니……. 큰 키도 아닌데 그럼 몸무게가 많이 나가겠니? 그래도 난 건강한데 ….'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었겠지만 어릴 적부터 받아온 상처는 내게 또 하나의 생채기를 남겼다. 그 일이 있은 뒤 난 다시는 헌혈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강의실로 향했다. 남들은 살 빼려고 운동과 돈에 매달린다지만 나 같은 경우는 살 좀 통통하게 쪄 보는 게 소원이었다.

이제는 복부비만 아저씨

그러다 마흔을 넘겼다. 어찌어찌해서 여우같은 아가씨와 결혼도 하고 토끼 같은 아이들도 있다. 지금은 예전과는 다른 고민이 생겼다. 살을 빼고 싶다. 어디만? 뱃살만…. 목욕탕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스필버그의 <E. T>라는 영화에서 본 그 외계인과 비슷하다. 음…….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과도 비슷하다. 다른 데는 그냥저냥 보통인데 이놈의 배만 점점 부른다. 이러다가 정말 산부인과로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복부에 가하는 전기치료 한의원에서 상담을 받고 내게 맞는 다이어트 방법을 처방해줬다. 식단과 적당한 운동,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씩있는 전기치료. 지방이 복부에만 집중되어 있어 먼저 복부에 뭉쳐 있는 근육들과 지방질을 풀어준단다. 
ⓒ 김승한 
 

큰 결정을 했다. 의학적 소견을 받아보고 적당한 운동량과 식습관의 변화를 통해 예전의 날씬한 배를 가진 그 때로 돌아가기로 말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피부는 탄력을 잃고 조금씩 처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64cm의 키에 66kg은 수치상으로 볼 때 그렇게 비만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살이 배에 몰려있다는 게 문제다. 2년 전까지 울산으로 출장을 가 잦은 음주와 칼로리 높은 안주로 배를 채웠던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날 급격한 '내장비만남'으로 만들어 버린 듯하다.

군대 있을 때는 평균 몸무게가 53~54kg이었고 담배도 안 피웠기 때문에 오래달리기엔 정말 자신 있었다. 3km 구보 후에 선임 병이나 후임 병들이 죽을상을 하고 연병장으로 들어오는 걸 보면 이해가 안 갔다. 그거 뛰고 뭐가 힘들다고.

복부비만 제거를 위한 프로그램이 시작되다

지금의 나를 보면 차라리 깡말랐을 때가 부럽기도 하지만, 이제는 갈 수 없는 옛날 일이 된 듯하다. 의사선생님 소견으로는 지방이 복부에 집중되어 있어서 당장 빼기는 힘들지만 같이 노력해 보자고 한다. 원래 정상적인 몸무게가 되려면 10kg을 뺀 56kg 정도가 돼야 하는데, 지금 당장 빼야 할 지방 덩어리는 5킬로그램 정도다. 몸 전체적으로 지방이 축적된 것이 아니라 복부에만 집중되어 있으므로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힘들다고 하신다.

체계적인 식단 조절과 적당한 운동을 하며 일과 중에도 앉아만 있지 말고 자주 스트레칭을 하기로 했다. 과연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효과가 나올지 나도 궁금하다. 반드시 성공하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식단표에 있는 오늘의 칼로리를 확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