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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와이드

CIA 고문 실태 공개한 81세 여성의원의 '고집'

9·11 사태 이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테러리스트들에게 가한 잔혹한 고문을 세상에 공개한 인물은 최고의 권력자 대통령도, 혈기왕성한 정치 신인도 아닌 미국 의회 최고령 여성의원 다이앤 파인스타인(81)이다.

파인스타인은 "CIA의 행위는 미국의 가치와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며 "보고서 공개로 오점을 지울 수는 없지만 미국이 잘못을 깨닫고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든을 넘긴 고령에도 왕성한 의정 활동을 펼치는 파인스타인은 지난 5년간 상원 정보위원장을 지내면서 이번 보고서 작성을 진두지휘하며 CIA와 정치권의 온갖 방해 공작을 막아냈다.

파인스타인은 지난 4월 존 브레넌 CIA 국장을 향해 "CIA가 상원 컴퓨터 시스템에 몰래 접속해 보고서 관련 정보를 삭제했다"고 주장하며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권력분립의 원칙을 어겼느냐"고 몰아붙였다. 

브레넌 국장이 발끈하며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사태가 마무리됐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보고서를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파인스타인이 승리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보고서의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CIA의 강력한 요구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끈질기게 설득하고 노력했지만 파인스타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그녀의 뜻대로 발표됐다. 

폴란드계 유대인 출신인 파인스타인은 스탠퍼드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1961년 샌프란시스코의 흑인 거주 차별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하며 정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69년 36세의 나이로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된 파인스타인은 남편이 암으로 숨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1979년부터 10년간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지내며 정치 경력을 쌓았다.

강한 진보적 성향의 파인스타인은 민주당의 지지를 얻고 1990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하지만 1993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현재까지 내리 5선에 성공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미국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가 너무 많고 유지 비용도 높다며 핵 감축을 주장했고, 총기 난사 사건이 빈번하자 자동 소총을 비롯한 공격용 무기의 판매, 이전, 소유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파인스타인은 이번 임기가 끝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치권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그녀의 지역구인 캘리포니아주를 물려받아 2018년 상원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