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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밀리터리 스토리

북한 김일성 사망에 관한 6가지 미스터리

김일성은 전 북한을 지배했던 정치인, 독재자 그리고 현 북한의 독재자로 군림하는 김정은의 할아버지이다. 1994년 갑작스런 죽음으로 많은 의문을 품었던 김일성은 어떻게 사망했을까?? 그리고 그 죽음으로 이득을 봤던 자는 누구였을까?


최초 남북정상회담 직전사망

1994년 7월 8일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 별장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당시 82세)


남과북이 분단된 이후로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1988년부터 남북정상회담이 최초로 제안되었고, 남북관계의 변동과 국내외의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회담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몇년간 지연되었다. 그리고 김영삼 정권 이후 1994년 7월 25일에 평양에서 연다고 합의 되었으나 김일성 사망으로 무산된다.


아들 김정일에 대한 공개적비판

1991년 4월 15일 김일성은 생일날 김정일을 후계자로 공식 발표한다. 이후 김정일은 실권을 장악하였지만 김일성은 그의 정치에 불만이 많았다. 그예로 북한의 제3차 7개년 경제계획을 결산하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21차 전원회의가 93년 12월 8일에 열렸다. 그 회의에서 김일성은, 김정일이 주도하면서 이끈 3차 7개년 경제계획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비판에 그치지 않고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다시 바로잡아야겠다’면서 권력 전면에 다시 나서겠다는 의사를 비췄다. 이때부터 아들의 권력을 견제했던 김일성이 김정일과 본격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사망직전 경호계획

묘향산 별장으로 향하기 전의 경호계획 단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김일성은 항상 8명의 의사와 동행한다. 근데 그날은 단 2명의 의사만 동행하였고, 김일성의 심장 주치의는 제외되어있었다.


사망당시 김일성과 김정일

김일성 사망장소인 묘향산별장에는 김정일과 함께 있었는데, 김일성 사망 이틀전 심한 갈등으로 김일성의 경호원이 김정일을 향해 권총을 뽑았다. 갈등 당시 심장발작으로 쓰러졌고 주치의가 없어서 사망함.


김일성의 오른팔인 장수연구소

김정일의 장수연구소를 비난했던 북한주민들 "장수연구소는 뭘했나?? " 사망장소를 명시하진않은 김정일을 의심하였다. 김일성 이 발작으로 쓰러졌고 마침 호우로 응급헬기는 착률을 포기 하지만 자동차를 타고 출발했던 의료진은 의문의 차사고로 전원 사망하였다.


사망장소 지도상에서 삭제

모든곳이 성영화 되는 북한에서 김일성 사망장소인 묘향산 별장터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