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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밀리터리 스토리

영원히 미궁에 빠진 대표적 군 의문사 "김훈중위사건"

전원책 변호사가 군가산점에관한 어떤 TV 토론회에서 했던말이 생각난다 "군대라는것은 원칙적으로 폭력을 관리하는 자유를 박탈당한 비교육집단입니다." 자유를 박탈당한 느낌은 군에서 복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수 있을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장교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자유의 박탈감은 일부분 뿐이고 군내에서는 여러가지 부조리와 문제점이 있다. 우리나라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군 의문사가 여러개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이고 정황상 누구나 이해할수 없었던 사건을 소개하며, 빨리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훈 중위 의문사

김훈 중위는 육사를 졸업하고 엘리트들만 간다는 JSA 판문점 소대장으로 부임한다. 하지만 1982년 2월 4일 부대 3번 벙커에서 머리에 총을 맞은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故 김훈 중위>


발견 직후 군의관이 오지도 않은채 40분만에 자살로 결정나고, 불과 4시간 뒤에 언론에게 알려진다. 이후 국방부에서 이루어진 1차, 2차 조사결과 모두 자살로 판정나게 된다. 그러나 유족들의 완강한 항의로 3차 조사도 이루어 지지만 그 결과 역시 자살로 판명됩니다.


아버지 김척(예비역 3성장군)은 그사실을 믿지 않았다.


1998년9월 김훈 중위 유족의 노력으로 천주교 인권위가 미국 법의학자인 노여수 박사를 초청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군대내 의문사 진실규명을 위한 법의학적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그 진실규명회에서 노여수 박사는 타살을 주장한다.

<이미지출처 : SBS>

그 근거로 

첫번째 자살시 사용한 m9권총은 쏘기전 노리쇠를 잡아 당여야하지만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

두번째 오른손잡이인 김훈 중위 손에서는 총 발사시에 반드시 나오는 화약흔이 발견되 않았다(왼손바닥에만 발견)

세번재 자살시 총구를 모리에 대고 쏘기때문에 십자 모양의 상처가나며 머리속으로 화약이 들어간다. 하지만 김훈 중위는 상처가 작고 상처밖에 화약이 묻어있다. 이는 떨어져서 쐈을때 생기는 흔적이다.

네번째 일반적인 총기 자살자들은 총알의 관통이 비스듬히 관통하지만 김훈중이는 평행하게 관통되어 있다 (이렇게 되기위해서는 굉장히 불편한 자세로 쏴야함)

다섯번째  머리정수리 부분에 피멍이 들어있다. 이것은 누군가가 머리를 내려쳤다고 볼 수있다.

<이미지출처 : SBS>


하지만 노여수 박사를 제외한 국내 법의학자들은 자살이라고 단정짓는다.

그후 당시 김훈중위 전 상사가 나와서 김훈중위의 자살동기를 공개적으로 증언하고 노여수 박사의 기자회견이 예정되어있었지만 일방적으로 취소시킨다 .더불어 국방부는 같이 조사에 참여한 인권단체에게는 절대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 다시 결론은 자살로 판정된다.

<이미지출처 : SBS>


이후 국방부와 협의후 당시 상황을 실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화약흔에 대한실험! 총의 격발시 공기중으로 분산되는 화약은 두가지 종류가 있다. 점화를 시켜주는 뇌관화약 그리고 추진제 역활을 하는 무연화약이 있다. 무연화약은 총의 앞쪽과 넓게 분사되는반면 뇌관화약은 뒷쪽으로 좁게 분사된다.


김훈 중위 손에서는 뇌관하약이 검출되지만 그것이 격발한 오른손이 아니라 총신을 쥐었다고 주장되는 왼손바닥에만 나왔다. 노여수 박사는 이것이 왼손으로 총신을 쥔게 아니라 방어자세에서 나온것이 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같은 자세로 실험을 한뒤 화약흔이 남는정도를 측정하였다. 결과는 12명중 단 한명만 나왔고 그 불검출도 아예 안나온것이 아닌 기준치에 1억분의 1그램만큼 적었다.


그전에 국방부는 조사 결과에 따른다고 하였지만, 역시나 자살로 단정짓는다. 또한 사망 당일 미군범죄수사대가 촬영하기 이전에 사건현장을 먼저 촬영한 미군하사가 있었다, 원래 부검전 시신에 손을 대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데, 누군가 시신을 닦는 모습이 찍혔다.


이후 말되 안되는 정황이 있었고 국방부의 조사 결과로 인한 국가에 대한 무너진 신뢰로 김훈중위의 동기들은 33명이나 전역한다. 김훈중위의 아버지 김척(예비역 3성장군)은 아들의 명예를 지키고 싶었다.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은 18동안  군대 내 인권 문제의 아킬레스건과 같았다. 군에 대한 전 국민적 불신을 초래한 대표 사례였기 때문에 방치할수없던 국방부의 숙제이다.


김훈중위 사건으로 군의문사 문제를 해결할 합리적 단초를 제공하였고, 여러 차례 김훈중위 사건에 대해 방송하였지만. 순직처리를 하기로 하였던 국방부는 계속 미루고 있다.


김훈 사건관련 '자살'동기를 제외한 대표적인 것들은 아래와 같다

- 당시 근무자들 중 총성을 들은 사람들이 없다는 점

- 최초 시신을 검안한 미군 군의관이 부검을 하면서 시신을 닦아내어 증거를 훼손한 점

- 김 훈 중위의 권총에서 지문이 발견되지 않은 점(평소 기름칠을 해서 지문이 검출되지 않을 수 있다)

- 김 훈 중위의 시신에서 발견된 총이 총기수불대장의 기록상으로는 김 훈 중위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

- 김 훈 중위의 권총에 장전되어 있는 남은 실탄에서 제3자(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았음)의 지문이 발견된 점

- 총을 발사했다던 김 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은 점

- 최초 현장사진에 찍혀있던 방탄헬멧이 사라진 점(미군 군의관이 나중에 자기것을 두고 왔다고 주장하였지만 미군헬맷이 아님.)

- 총상 형태 및 사입 화약 상태로 보아 총구를 머리에 대고 쏜 것이 아니라 총구와 머리 사이에 간격이 있는 근접사인데. 근접사로 권총자살하는  비율은 3%도 되지 않는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