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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레저

인류 최초로 맥주를 만든 사람들

맥주의 역사? 언제, 어디서, 그 모든게 시작되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인류의 기원이 여전히 모호함과 신비에 싸여있듯 맥주 역시 그러하다. 한가지 그럴싸한 가정은 인류와 문명이 지구상의 이격된 지역에서 오랫동안 독립적으로 진화했듯이 맥주 역시 그러했을 거란 점이다.


수천 년을 내려 온 중국인의 쌀맥주나 스페인에 정복당하기 오래 전부터 페루 인디언이 마신 옥수수 맥주 치차, 아프리카 사람들의 밀레로 만든 맥주(피토)는 이 가정을 뒷받침한다. 오늘날 맥주 종주국인 독일을 포 함한 중부 유럽과 북유럽인의 선조 격인 숲 속 바 바리안들 역시 늦어도 기원전 1,000년경에는 밀과 보리로 맥주를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최초로 맥주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 현존하는 기록에 따르면 인류 최초로 맥주를 만든 사람들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 메소 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인이다. 지금의 이라크 국경내에 위치한 이곳에서 수메르 문명의 싹이 튼 것은 기원전 4000년 무렵이다. 

12개의 점토판에 수메르 설형문자로 새겨진 <길가메 시 서사시>에는 수메르인이 맥주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야수 엔키두 는 맥주를 마셨다. 그는 맥주를 7번을 마셨다. 그의 영혼은 평온해졌고 그는 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행복함이 온 몸을 채웠고 그의 얼굴은 밝게 빛났다. 그는 몸에 있는 털을 물로 씻어내고 자신의 몸을 오일로 닦아냈다. 마침내 엔키두는 사람이 되었다.” 


엔키두는 영웅 길가메시와 처음에는 적이었다가 나중에는 고난을 함께한 반수반인 영웅이다. 엔키 두는 원래 털북숭이에 봉두난발한 괴물이었으나 길가메시와 친구가 되면서 ‘문명’ 을 접한 후 ‘야성’ 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엔키두가 맥주를 마시고 털 을 씻어내는 이 대목은 엔키두가 문명을 접하면서 야생성을 잃는 중요한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수메르인이 문명의 상징으로 맥주를 언급한건 의미심장하다. 짐승에서 사람, 자연에서 인간, 야만에서 문명으로 가는 길목에서 수메르인에게 맥주는 하나의 구분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맥주 없는 수메르 문명을 얘기할 수 있을까? 맥주 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남긴 문명답게 수메르인은 공사를 막론하고 중요한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모두 모여 맥주를 마셨다. 

그들에게 맥주는 음료나 여흥의 의미를 넘어 의식의 일부였다. 특히 장례식에서는 망자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신에게 바치 는 제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이런 까닭일까. 수메르인의 맥주 소비는 상당했다. 당시 한해 보리와 밀생산량의 거의 절반을 맥주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하니 말 다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생산과 소비다. 거의 찬양에 가까운 수메르인의 맥주 사랑을 보면, 맥주를 만드는 사람 역시 대접받았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남녀 구분 없이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은 전문 인력으로서 존경을 받았고 군역도 면제되었다. 

맥주는 심지어 돈 대신 사용되기도 했다. 기원전 2900년의 설형문자 기록에 따르면 장례식을 치러 주고 사제가 받는 대가는 맥주 일 곱 단지였다. 신을 섬기는 사제들 의 맥주 사랑은 고대 수메르나 중 세 유럽의 수도사나 좀 각별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