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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밀리터리 스토리

만약 발견하지 못했다면? 북한의 남침용 "땅굴"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남침용 땅굴은 제1,2,3,4땅굴로 총 네개 입니다. 북한이 기습작전을 수행할 목적으로 DMZ(비무장지대) 지하에 굴착한 것입니다. 일명 9.25교시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북한의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각 군단별로 땅굴 작전이 수행되었으며, 약 20 개의 땅굴이 굴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 제 1땅굴

1974년 11월 15일 오전 7시 35분에 육군 25사단 수색대에 의해 고랑포 지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임무수행중이던 수색대원이 땅 밑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아래에 터널이 있음을 확인하고 흙을 파다가 북쪽으로부터 3분간 300발 가량의 기관총 사격을 받았습니다.

이 사격으로 8명중 3명이 전사하고 5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에 군사정전위원회에 정식 제기하면서 제1 땅굴의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땅굴은 폭 1미터에 높이 1.2미터로 전체길이 3.4키로 굴착되어 있었으며, 땅굴안에는 전등시설과 레일이 깔려 있었습니다. 

유사시 전술능력은 1시간에 1개 연대이상의 무장병력을 통과시킬 수 있으며, 바닥에 깔린 레일을 이용하여 중화기 운반도 가능했습니다.


발견 이후 한미 공동 조사반에서 수색하던 중 북한이 매설한 폭발물에 의해서 국군장교 1명과 미군장교 1명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1988년 이후 안전문제로 인반인 공개가 중단되어 있습니다.


2. 제 2땅굴

대대적인 땅굴 수색으로 제 1땅굴이 발견된 이후 4개월뒤인 1975년 3월 19일, 철원 동북쪽 지점에서 항공사진등을 근거로 시추탐사에 의해 발견 되었습니다. 이곳은 폭 2.1미터, 높이 2미터의 전체길이 3.5키로로 굴착되어 있었으며, 내부에는 많은 병력이 집결할 수 있는 광장도 있었습니다.

정규전에서 1개 사단병력을 후방으로 침투 시킬수 있었고, 비정규전에서는 공작원과, 1개여단 병력을 은밀히 침투 시킬수 있는 땅굴이었습니다. 또한 야포와 차량 및 전차의 침투도 가능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수색중 지뢰와 부비트랩에 의해 8명이 전사하였습니다.


3. 제 3땅굴

3년후 1978년 10월 17일 판문점에서 4키로 떨어진 지점에서 땅굴 수색 시추공사를 하던중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은 유엔군 전진기지로부터 2키로 떨어진 곳이 었습니다. 

제2 땅굴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1시간에 3만명의 병력과 마찬가지로 야포 등의 중화기를 통과 시킬수 있었습니다.


4. 제 4땅굴

1990년 3월 3일 강원도 양구에서 발견된 제 4땅굴은 폭 1.7미터 높이1.7미터 전체길이 약 2키로의 달하는 암석층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부전선에서 발견된 최초의 땅굴이며, 북한이 휴전선 비무장지대에 걸쳐 남침용 땅굴을 굴착하였음을 입증하였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북한의 땅굴 목적은 전면전시 신속한 병력이동으로 주요 전략지역점령 및 특수부대를 침투시켜 후방을 교란시키는데에 있다고 합니다.


만약 발견하지 못했다면,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습니다. 땅굴수색으로 전사하신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