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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밀리터리 스토리

KGB 출신으로 밝혀진 북한 김일성의 역사조작 사건

1994년 6월 7일 구소련의 비밀첩보 조직이었던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한 1급 비밀문서에서는 김일성이 해방당시 항일투쟁을 하지 않고 있었다고 밝혀졌습니다.


비밀정보를 전문적으로 입수해 폭로하는 역할을 하는 "정보와 국가안보" 에서 92년1월 낸 "KGB의 1급비밀 서류철에 포함된 국제첩보활동:1975∼1985년분" 이란 제목의 특집물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집물 속에는 "김정일이 과감한 빨치산투쟁을 한 후 45년 8월 일제로부터 조국을 해방시킨 영웅임을 자처해 왔으나 KGB는 그가 당시 북한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소련군이 한반도 이북을 해방시킬 당시 김이 붉은 군대의 중위로 복무해오면서 동시에 NKVD (KGB 전신) 요원이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1대 최고지도자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 입니다. 지금도 북한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로 알고 있으며 김일성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과는 다릅니다.


김일성은 중학교 중퇴후 1932년 만주에서 3~4명과 유격대 활동을 시작한 것은 맞습니다. 여러 독립군을 전전하며 '동북항일연군'에 가담하고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고, 일본군의 표적이 된 김일성은 1940년 만주에서 소련으로 퇴각하고 88여단에 편입됩니다.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자 스탈린은 만주와 조선, 사할린에 침공하여 일본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립니다. 88여단에 편입되고 소련의 지휘아래 있던 김일성은 구경만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의 주역은 소련군이었기 때문입니다.


해방 후 평양으로 돌아온 김일성은 평양 주둔 제25군 북조선 정치사령관 레베데프(Nikolai Lebedev, 1901~1992)소장과에게 천연덕스럽게 '역사를 조작하자'고 건의합니다.

(레베데프가 중앙일보 취재팀에게 밝힘)


"김일성: (레베데프)장군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빨치산 부대도 일본과의 해방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해주십시오. 우리는 여러번 이 전쟁에 참전할 수 있도록 하바로프스크 사령부에 건의했으나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레베데프: 그게 무슨 말인가? 조선을 해방시킨 것은 소련의 제25군과 태평양함대 뿐이다. 제88정찰여단 빨치산 부대의 단 한 명도 대일본전에 참전하지 않았고 총 한 번 쏘지 않았다. 절대로 역사를 바꿀 수 없다." 


김일성이 소속되어있던 88여단은 소련군 소속이 아니라 악명 높은 소련의 비밀경찰 두목 "베리아"가 지휘하던 NKVD(KGB 전신) 소속 부대였습니다. 일본의 항복 이후 소련의 이익을 위하여 복무할 조선인을 찾고 있다가 김일성에 착안한 것 입니다.


소련군 극동군 제2방면군 사령부가 1945년 8월 말이나 9월 초에 김일성을 불러 심사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사령관 푸르카예프 대장과 군사위원 쉬킨이 김일성과 나눴다는 대화록은 소련 국방부 전사 연구소에서 근무한 가브릴 코로트코프가 쓴 <스탈린과 김일성>에 나옵니다.


쉬킨 : 당신은 적군(구소련의 정규군)에서 계속 근무하길 원하는가?


김일성 : 예, 그렇습니다. 


쉬킨 : 만약 당신에게 북한에 일하러 가라고 제안한다면?


김일성 : 세계혁명 과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이면 항상 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쉬킨 : 아주 훌륭한 대답이었소. 


(김학준 ‘북한의 역사’ 1권에서 재인용, 서울대학교출판부)


  

결론은 김일성은 소련군에서 KGB 요원이었고, 부대내 항일연군 빨치산 출신자들의 동향을 염탐 보고하여 소련군의 신임을 얻고, 이로 인해 다른 조선인 상급자들을 제치고 KGB 라인으로 소련 수뇌부와 연결되어 북한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