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밀리터리/전쟁사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한 역사적인 전쟁 톱10

둘 이상의 서로 대립하는 국가 또는 이에 준하는 집단 간에 군사력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사용해서 상대의 의지를 강제하려고 하는 행위 또는 그 상태를 전쟁이라 하죠. 적의 군사력에 비해 초라했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함과 동시에 강한 의지와 뛰어난 전술로 승리한 역사적인 전쟁을 소개하겠습니다.

10. 아쟁쿠르 전투
잉글랜드왕국 6,000 vs 프랑스왕국 25,000
영국군의 전사자는 100명에서 500명 남짓했고, 기사와 귀족의 사망자는 10여명에 불과했지만, 프랑스군은 최소 4000에서 1만에 달하는 전사자가 발생했습니다.


09. 가우가멜라 전투

헬라스동맹군 45,000 vs 페르시아군 250,000

마케도니아군이 압승을 거둠으로써 사실상 아케메네스 왕조의 숨통을 끊은 전투이긴 하지만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일방적인 학살 수준은 아니었으며, 페르시아군도 나름 분전한 전투이죠.


08. 행주대첩

조선군 3,000 vs 왜군 30,000

임진왜란 때인 1593년 2월에 전라도관찰사 권율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전투입니다.


07. 비수전투

동진군 80,000 vs 서진군 900,000

강남을 통일하려던 부견은, 그에 반대하는 왕맹이 죽자 90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진격하였으나 이 무렵에 경구에 포진하여 용맹을 떨치던 동진의 사현이 이끈 8만의 군사에게 비수 부근에서 패하였습니다.


06. 출하점 전투

여진족 3,700 vs 요나라군 100,000

당시의 강국이었던 요나라가 출하점에서 한낱 여진족에게 개박살이 난 전투로 광무제의 곤양대전이나 항우의 팽성대전에 비교될 정도의 엄청난 승리, 고작 3700명의 군사로 무려 10만명의 요나라군을 무려 27배에 달하는 병력의 열세 상황을 이기고 승리한 역사에 남을 엄청난 전투입니다.


05. 팽성전투

항우군 35,000 vs 유방군 600,000

달콤한 봄꿈에 젖어있던 유방과 모든 사람들에게, 항우는 작금 중국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일깨워 주었죠. 3만으로 무려 18배가 넘는 전력을 깨부순 일은 야전에서 항우의 군사적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04. 명랑해전

조선군선 13 vs 왜군선 133

조선을, 나아가 한민족과 한반도를 지켜낸, 세계 해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하고 빛나는 승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정유재란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해전이죠.


03. 안시성 전투

고구려군 20,000 vs 당나라군 700,000

645년(보장왕 4년), 고구려의 안시성에서 벌어진 전투로 제1차 여당전쟁의 대표적인 전투입니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여러 성을 함락하는 등 많은 피해를 주었지만 안시성의 실패로 고구려에서 철수하게 되죠.


02. 베티고지 전투

한국군 36 vs 중공군 1,400

중공군 피해는 전사 314명, 부상(추정)450명, 포로 3명 등 발생했고, 아군 피해는 전사 24명이었습니다. 김만술 소대장을 비롯하여 12명은 생환했습니다. 김만술 상사는 이 전공으로 후일 한국과 미국의 최고무공훈장 금성태극훈장 및 십자훈장을 수여 받았습니다.


01. 겨울전쟁

핀란드군 : 병력 30만, 탱크 30대, 전투기 110대

vs

소련군 : 병력 148만, 탱크 6,540대, 항공기 3,880대

전쟁 기간 동안의 핀란드군은 전사자 약 2만 5,000여 명, 부상자 4만 5,000여 명의 피해를 입었으며 소련군은 전사자 12만 7천 명, 부상자 18만 9천 명이라는 경이적인 인명피해를 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수도 있었던 북한의 무력도발사건 톱10

 베트남 전쟁당시 사용됐던 폭탄들의 흥미로운 사진들

 일본의 최초이자 유일한 흑인 사무라이

 절대 사용해서는 안될 전쟁범죄급 무기 '집속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