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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전쟁사

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를 속인 기발한 작전

1943년 초,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치열하고 기나긴 전투 끝에 롬멜 장군의 아프리카군단을 격파한 연합군의 다음 목표는 유럽으로의 진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놓고 미국과 영국간에 이견이 생기죠. 미국은 단시간 내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 단숨에 프랑스에 상륙해 독일로 진격하자고 했고, 영국은 일단 이탈리아부터 공격해 독일을 압박해야한다고 주장했죠.


알제리 카사블랑카에서 회담한 루즈벨트와 처칠은 일종의 타협안에 합의합니다.  당시 연합군의 전력으로는 바로 프랑스를 침공하기는 힘드니 대신 시칠리아에 상륙해 이탈리아를 위협하고, 다음 단계로 프랑스에 발을 들여 놓겠다는 안이었습니다. 허스키 작전으로 명명된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작전은 1943년 7월에 실행될 계획이었습니다.


시칠리아 섬 상륙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독일군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는데, 영국 정보부는 기발한 작전계획을 내놓습니다. 

<해군 정보 장교 유웬 몬태규 (Ewen Montagu) 중령>


민스미트라는 이름을 붙인 이 작전은 해군 정보 장교 유웬 몬태규 (Ewen Montagu) 중령의 머릿속에서 나왔는데, 가상의 장교를 하나 만든 다음, 그 장교로 위장시킨 시체에 독일군을 따돌릴 정보를 매달아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미끼를 놓을 장소는 스페인으로 정해졌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스페인은 중립을 지키고 있었지만 독일과 이탈리아와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추축국 정보기관의 영향력이 큰 나라였기 때문이었죠.


영국 정보부는 공동묘지에서 한 행려병자의 시신을 구해다가 윌리엄 마틴 소령이란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영국해군 지중해 사령관에게 연합군이 그리스를 침공한다는 거짓 명령이 담긴 기밀 서류가 든 서류가방을 묶어 놓고 폭풍우가 불던 날 밤, 이 시신이 스페인 해안으로 밀려가게 했던 것입니다. 영국 해군 잠수함  세라프(HMS Seraph)가 이 작전에 동원 되었습니다.


얼마 후, 스페인 정부는 영국군 소령 윌리엄 마틴의 시신이 스페인 해안에 떠밀려 왔다는 발표했고, 영국 정부는 시신과 서류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영국 정보부가 예상했던 대로, 스페인 당국은 이 시신과 서류를 독일 정보요원에게 넘겨준 뒤였습니다. 


윌리엄 마틴 소령의 시신은 스페인에 매장되었고, 서류 가방은 일 주일 만에 영국 정부에 전달됩니다. 겉으로 보기에 서류봉투는 개봉된 흔적이 없었지만  영국 정보부는 이 봉투를 철저하게 검사했고, 마침내 이 봉투가 개봉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위장작전은 성공이었습니다.



정보기관으로부터 연합군이 그리스를 침공하려한다는 보고를 받은 히틀러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귀환한 롬멜 원수와 그의 기갑부대를 그리스 방어를 위해 남부 유럽으로 배치했고, 시칠리아의 독일군 방어선도 축소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인 1943년 7월 10일, 몽고메리와 패튼이 지휘하는 16 만 명의 연합군 병력이 시칠리아 상륙에 성공합니다. 독일군이 시칠리아 방어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연합군 상륙 이후 39일간 벌어진 시칠리아 전투는 2차 대전의 판도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시체 한 구가 수많은 연합군 장병들의 생명을 구하고 승리의 발판까지 마련한 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