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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전쟁사

스탈린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죄수부대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죄수들로만 편성된 부대를 본적이 있으실 겁니다. 최근 나온 악당히어로"수어사이드스쿼드"와 같은 영화말이죠. 그런데 이런 부대가 실제로 존재하였고, 운영했었습니다. 


1941년 6월 22일 해가 뜨기전 독일군은 소련의 국경을 넘어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 합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을 당한 소련 군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항전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밀리기만 합니다.  6월 29일에는 민스크(Minsk)가 함락되고, 7월 16일에는 75 만 명이 포로가 되면서 스몰렌스크(Smolenk)를 내주고 맙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단 4주 만에 독일군은 650Km를 진격하고, 12월에는 모스크바 외곽 20Km 지점까지 도달합니다. 


전쟁 초기 소련군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소련군 내부에 있었습니다. 1930년대 중반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소련군내의 소령급 이상 장교 과반수 이상이 처형되거나 감옥에 갇혔고, 그나마 살아남은 장교들은 일천한 전투 경험에 전의도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죠. 


숫자만 많은 전차나 항공기의 태반도 낡아 빠진 구식인데다, 통신 장비도 열악하기 그지없어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소대급 까지 배치된 정치 장교의 입김으로 군은 정치에 종속된 무기력한 조직으로 전락했으며, 이것은 전쟁 초기 소련군의 무기력한 패주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1942년 7월 28일, 벼랑 끝으로 내몰린 스탈린은 ‘단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나지 말라’는 ‘국방인민위원 명령 227호’ (Order 227)를 전 소련군에 하달합니다. 이 명령의 골자는 허가 없이 후퇴하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즉결처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각 야전군 당 3~5개의 잘 무장된 독전대를 편성하여 그들을 불안정한 사단들 후방에 배치하여, 이 사단 일부가 공황 속에 무질서한 퇴각을 벌일 경우에는 공황에 빠진 이들과 겁쟁이들을 즉결처분하도록 하며, 이로서 충성스러운 병사들에게 조국을 위해 그들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라.” 그리고 명령 227호에는 독전대와 더불어 형벌 부대, 즉 형벌 대대(Penal Battalions)와 형벌 중대(Penal Companies)의 창설을 지시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죠.


형벌 부대란 말 그대로 과오를 저지른 병사들을 모아 편성한 부대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 값을 피로써 갚으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저지른 죄도 각양각생이었죠. 적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던 병사들도 조국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형벌부대에 배치되었고, 심지어는 직장에 지각했다는 이유로 ‘인민의 적’, ‘반혁명 분자’로 규정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끌려온 민간인들도 있었습니다. 

악명 높았던 소련 형법 58조는 수많은 정치범들을 양산했고, 전시상황에서 총살형을 면제 받은 대신 이들은 죽음이 뻔히 내다보이는 가장 어려운 임무에 투입되었습니다. 오직 ‘죽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형벌 대대는 대대본부와 3개 형벌 중대, 그리고 1개 경비 중대로 구성되었는데, 이 경비중대가 바로 독전대의 역할을 했습니다. 돌격 명령에 조금이라도 주저하거나 도망치는 형벌 부대원에게는 자비란 없었습니다.

<악명 높았던 NKVD 독전대>

이들 형벌 부대는 평상시는 후방에서 독전대의 삼엄한 감시 하에 있다가, 독일군에 의해 막대한 병력 손실이 예상되는 곳으로 배치된 후 전투배치를 받은 뒤에야 무기를 지급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아무런 무기도 지급받지 않고 전장으로 내몰리는 일도 드물지 않았고, 이 경우 그들은 죽은 동료들의 무기를 집어서 사용하라는 명령을 받았죠. 

<악명 높았던 NKVD 독전대>

형벌부대원이 이 끔찍한 상황을 벗어나는 길은 죽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공격 시에 언제나 최선두에 서야했고, 후속부대가 적의 공격에 입을 손해를 미연에 막는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때때로 이들은 독일군의 방어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에서 무모하게 내몰리는 소모품으로 취급되기도 했고, 아군의 전진을 위해 맨몸으로 지뢰밭을 개척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습니다.  도망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상황에서 형벌대대의 공격은 언제나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죠.


형벌부대원들이 불을 뿜는 독일군의 기관총 앞으로 무모한 돌격을 통해 막대한 피해를 입어가며 전선을 돌파하고 나면, 이들은 곧 후방으로 물러나고 곧 정예 소련군 부대인 충격군 (Shock Army)이나 친위군(Guards Army), 저격사단 등이 투입되어 형벌부대가 만든 돌파구를 토대로 전과를 확대하곤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죄수들이 전공을 세우는 일이 있어선 안 되었기 때문이죠. 


이런 형벌부대의 존재는 전쟁 후에도 소련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졌으며, 그 존재가 공식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을 타고서였습니다. 1988년 소련 ‘군사사저널’에 ‘명령 227호’의 전문이 공개된 이래, 독전대로 활동했던 퇴역 장교의 기고가 실리는 등 수 십년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소련 형벌부대의 이야기들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형벌부대에는 얼마나 많은 소련 군인들이 복무했을까요?  러시아의 군사 역사학자 ‘드미트리 볼코고노프’가 정부 문서 저장고에서 발견한 기밀문서에 따르면, 약 6만 명이 독전대에 의해 사형을 선고 당했고 또 다른 60 만 명이 형벌 부대에 복무토록 명령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