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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전쟁사

2차세계대전의 숨은 주역 암호해독기 "콜로서스"

전쟁에서 보안의 중요성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적에게 노출된 전략은 더이상 쓸모없어지는것이 전장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에니그마 라는 암호기를 이용해 철조한 보안으로 유럽을 빠르게 점령했습니다. 반대로 연합국은 그 암호를 풀지못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최초의 컴퓨터라 불리는 "콜로서스"의 등장으로 에니그마의 암호해독에 성공하여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당시 빠르게 유럽을 점령하여 패배를 몰랐던 독일군이 무너진것을 본면 통신보안은 더욱 중요합니다.


# 전쟁의 시작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남긴 가장 파괴적이고 처참한 전쟁이었습니다.그당시 놀랄만한 새로운 기술과, 강력한 무기가 나왔으며, 전세계 상대로 진행된 전쟁은 전쟁물자만을 만드는데 집중하였습니다.

▼독일이 시작한 제2차세계대전은 잔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 에니그마의 등장

전략면에서 지난패배의 이유가 무었인지, 병력운용에관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연구하여 짜임새 있게 전쟁을 준비한 독일은 에니그마(enigma)도 미리준비했다. '수수께끼'라는 쓰의 에니그마는 독일군이 사용한 암호기이다.

독일군이 사용한 암호기 '에니그마'


독일군은 암호기술에 열을 다했으며 약 30kg의 무게의 타자기 모습을 한 에니그마라는 것을 제작한 것이다. 에니그마는 대량으로 생산된 최초의 자동 암호기인데, 이는 원래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개발됐다. 하지만 상업화 반응은 싱거웠고 결국 전쟁을 준비하던 독일이 1930년에 에니그마를 암호기로 선택하면서 기능에 대해 재평가 받기 시작했다.

대량으로 생산된 최초의 에니그마


# 난공불략

전쟁이 본격화 되고 독일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암호문은 공중파를 통해 전송되었다. 이같은 전파방식은 도청하기 시웠지만, 독일군은 에니그마에 불규칙적인 회전자를 사용하는 등의 규칙을 다르게 해서 경우의 수를 올려 만약 에니그마가 적군에 손에 들어가도 회전자를 몇개 사용해서 만들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해독이 불가능했다.

에니그마의 회전자


에니그마에 자신이 있던 독일은 세계 각지에 보내는 비밀문서에도 사용하였다. 통상적으로 한달마다 경우의 수중 몇가지를 골라 암호책을 전장에 배포하였고 그 교환주기는 8시간이었다. 혹시 연합군이 암호책을 습득하더라도 수시로 바꿨기 때문에 역시 해독은 힘들었다.



# 해독을 위한 연합국의 대응

에니그마의 등장은 연합국들에게 어떤무기보다 두려운 존재였다. 독일군의 침공전부터 폴란드는 에니그마 암호분석을 위해 전담부서를 창설하고 첩보원으로부터 에니그마의 존재와 사용법을 넘겨받았다. 기계의 복잡성으로 난항을 겪었지만 독일군의 인간적인 실수로 암호해독의 가속도를 붙인다. 이론적으로 폴란드는 독일군의 암호문을 20분안에 해독하는 단계에 이르지만 독일이 에니그마 운용법을 바꾸면서 폴란드는 다시 난항을 겪었고 독일의 침공전에 에니그마에 대한 자료를 비밀리에 영국에 전달한다.

에니그마를 사용하는 독일군


# 콜로서스의 등장

예상보다 전쟁이 빠르게 일어나자 영국은 유명한 과학자들을 비밀리에 소집한다. 에니그마 암호해독작전명 "울트라"이다. 영화 이미테이션게임을 보면 앨런튜링이 작전에 포함된다.

캠브리지 대학교 출신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


앨런튜링은 1943년 콜로서스라는 기계, 즉 최초의 컴퓨터를 개발하였다 2400개의 진공관을 이용해 만든 이 컴퓨터는 높이가 무려 3미터에 달하여 콜로서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콜로서스에는 판독기가 5대씩 부착돼 있어 1초에 총 2만 5000단어를 처리할 수 있었다. 콜로서스를 이용해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한 영국은 전쟁이 끝난 1970년대 후반까지 콜로서스의 존재를 철저히 비밀로 하였고 일부러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앨런튜링의 최초의 컴퓨터 콜로서스


만약 콜로서스가 없었다면 독일은 핵 공격을 당했을 가능성이 컸기에, 에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한 콜로서스는 미국의 핵 폭격 전에 제2차 세계대전을 종전시킨 숨은 주역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이후 앨런튜링은 1950년 <계산하는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컴퓨터의 기능을 한 단계 끌어올렸지만,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영국은 그를 외면했다.

해독을 위한 흔적


결국 그는 42세의 짧은 나이에 청산가리가 포함된 붉은 사과를 먹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추측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애플(Apple)의 한입 베어 문 사과 로고가 세계 최초의 컴퓨터 설계자인 튜링의 슬픈 죽음을 기리기 위해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가 선택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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