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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밀리터리 스토리

영국군대가 수백년을 이어온 유별난 전통

영국의 이미지는 런던 버킹검 궁전을 지키는 근위병들의 검은색 털모자와 붉은 유니폼으로 떠오릅니다. 몇 백 년의 세월을 뚫고 갑자기 나타난 듯한, 고색창연한 복장의 이들 근위병들은 엄연히 영국 육군의 정규 병력들입니다. 스코틀랜드 근위연대 1대대 소속 병사들이죠.  


이 근위병들이 의장 행사만을 위한 장식용 부대라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이들은 82년의 포클랜드 전쟁과 몇년전 벌어진 이라크 전에도 참전한 유서 깊은 전투부대입니다.


전반적으로 군사적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에서도 영국인들의 기질은 남다른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현역 사단인 영국 육군 1사단 소속 부대의 예를 들어보면  1사단 4기갑여단 예하 대대는 랭카스터 공작연대 1대대, 스코틀랜드 근위연대 1대대, 왕립 용기병연대 1대대, 여왕 용기병연대 1대대 등등... 왕정시대의 부대 이름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대 창설 당시의 무장이 부대이름에 남아 이어져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Royal Welsh fusiliers'는 로얄 웰시 수발총병 부대로 번역할 수 있는데요, 이 수발총이란 물건이 부싯돌로 탄환을 발사하는 19세기 총인데 그럼 이 친구들 아직도 이 구닥다리 총으로 무장하고 있을까요?  



심지어 최신예 전차나 장갑차, 자주포를 장비한 정규 기갑부대에도 용기병(Dragoon), 경기병(Hussars), 기마포병(Horse Artillery) 같은 수백 년 전에 활약했음직한 병종 명칭까지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또 부대 이름에 스코틀랜드 기병사단, 스코틀랜드 1사단 등 지역 명칭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죠. 예를 들어 ‘Black Watch, Royal Highland Regiment’ 부대는  하이랜드라고 불리는 스코틀랜드 출신들로 편성했던 부대로 2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영국군대의 이름만으로 보자면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대영제국군을 연상시킬 정도죠.


전통적으로 영국 육군의 연대급 부대들이 창설된 시기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00여년이나 뒤에 창설된 사단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죠. 영국 육군은 오늘날 기본적으로 사단-여단-대대 단위의 편제를 가지고 있지만, 각 대대들은 여전히 예전 소속 연대를 대대 명칭 앞에 같이 써서 오랜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설사 부대를 해체하거나 재편성한다 해도 수백 년 된 부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는 군요.


젊은 날 자신이 근무했던 부대를 찾아와 손자뻘 되는 새파란 후배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노병을 만나는 건 영국에선 드문 일이 아닙니다. 영국군대의 이 같은 오랜 전통과 역사는 부대원들의 전우애 단결력 향상은 물론 부대에 대한 명예와 자긍심을 기르는 원천입니다. 영국군에 있어 전통은 단순히 옛것을 지키는 차원을 넘어 현실적으로 군을 지탱하는 원동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