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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무기의 세계

비운의 총기로 사라진 무탄피소총 G11

19세기 중반 탄자와 장약, 뇌관을 일체화하여 금속 탄피에 담은 총탄의 발명은 총기 발달사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마련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연사가 가능한 기관총의 출현도 금속제 총탄이 아니었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총탄을 쓰는 것에는 장점 못지 않게 단점도 존재했는데, 가장 큰 단점은 탄피의 무게와 가격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군용 소총의 경우 총탄에서 탄피가 차지하는 무게가 50% 정도였고, 역시 총알 1발을 만드는 생산비용의 절반가량이 금속탄피의 값이었습니다. 또 소총의 작동과정 중에서 탄피를 배출하는 과정은 의외로 까다롭고 번거로운 일이어서 작동불량 등을 일으킬 우려도 있는데다가, 탄피 배출구를 통해 먼지 등의 불순물이 총기 속으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만약에 탄피를 배출하는 과정이 없다면 이런 번거로움이 없을 뿐 아니라, 소총의 발사속도도 빨라지는 이점도 생기게 되지요. 또 탄약 자체가 가벼워지니 개개의 전투원은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탄약을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되죠.


1969년부터 서독의 ‘H&K’는 무탄피 소총 개발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죠. 총탄의 생산은 ‘다이나밋 노벨’에서 맡았습니다. 탄약의 개발 자체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금속제 탄피를 없애고 탄자와 장약, 뇌관을 일체화 시키는 방법으로 장약 자체를 덩어리로 굳혀서 이것으로 탄자와 뇌관을 둘러싸는 방법이 고안되었죠. 


문제는 총탄보다 이 걸 쏘는 총에서 발생했습니다. 원래 일반 소총탄을 쓰는 소총에서 금속제 탄피는 장약이 터질 때 나는 열을 흡수해서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도 수행했는데, 탄피의 배출과정 자체가 없는 무탄피 소총에서는 그 열을 다 약실에서 흡수해야 했죠. 


그러다 보니 달아 오른 약실 속에서 방아쇠를 당기지도 않았는데 총알들이 알아서 발사되는 이른바 ‘쿡 오프’ (Cook-off) 현상이 발생했던 겁니다. 또 장약이 터질 때 마다 생기는 그을음이 약실에 쌓여 작동불량을 일으키기도 했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야 했던 ‘다이나밋 노벨’의 기술진들은 장약자체의 만감성을 낮춰 어지간한 열에는 반응하지 않도록 했고, 발사시의 그을음을 최소화 시킨 총탄을 개발하는데 성공합니다. 마침내 1986년, 4.73mm 구경의 무탄피 탄이 DM11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총기 자체도 1974년 시제품이 나온 이래 1982년에 기본설계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소총이 바로 G11입니다. 



G11이 일반 소총탄을 쏘는 소총과 가장 다른 점은 아래위로 회전하며 (일반 소총은 앞뒤로 왕복운동), 발사시 에는 총열과 노리쇠, 가스피스톤 등을 한 덩어리로 총의 몸통 안에서 왕복하는 독특한 노리쇠 구조에 있었습니다. 특히 회전식 노리쇠 구조 덕분에 발사 속도도 엄청나게 짧아져서 3점사로 쏠 때는 초당 30~35발 이상이 발사되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습니다. 


이 속도는 세 발이 나가는데 겨우  0.06초 걸린다는 얘긴데. 한 발이 총구를 다 빠져 나가기 전에 다음 발의 발사가 시작될 정도로 짧은 시간이죠. 사실 2차 대전과 한국전을 치른 미군은 실제 보병 전투가 벌어지는 공간은 100m 이내이고, 이 거리라면 위력이 강한 탄 한 발 보다는 여러 발을 최대한 단시간에 목표물에 적중 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었습니다. 


한발, 한발의 위력은 일반 소총들보다 크지 않아도, 최대한 짧은 시간동안 목표물에 많이 맞출 수 있는 G11이야말로 이런 목적에 부응하는 무기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 어렵게 개발해 낸 만큼 판매 전망도 밝아보여서 1990년대 서독군에 30만정을 보급하고, 당시 미 육군이 추진 중이던 신형소총 계획에도 참여하겠다는 장밋빛 꿈을 H&K는 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문제는 살인적인 탄약 값에 있었습니다. 


애초 탄피로 사용되는 금속 값을 절약해보자는 것이 무탄피 소총의 개발 이유 중 하나였는데, 이 G11이 쏘아대는 총탄 1발의 가격이 우리 돈으로 무려 1만원 가까이나 했던 것입니다. (현실에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 총의 최대 발사속도인 분당 600발을 쏘면 한순간에 600만원이 날아가 버린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양산 전의 시제품 가격이라, 많은 양이 생산되면 어느 정도의 가격 인하는 가능했겠지만 H&K로서는 불행하게도 영영 그럴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졌고, 2년 뒤에는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냉전이 끝나 버렸기 때문이죠. 통일 비용을 감당하느라 허리띠를 졸라 매던 독일군대가 이 소총을 사야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겁니다. 


마지막으로 희망을 가졌던 미군 역시 그들이 사용하던 M-16소총의 개량모델인 M16A2을 쓰기로 결정하면서 G11의 운명 역시 끝장나 버립니다. 긴 세월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G11 개발에 투자했던 H&K 자체도 경영 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영국인의 손에 매각되는 비운을 겪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