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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럭셔리

죽을때까지 매일 6억원을 버는 월가의 저승사자

"기업 사냥꾼" "월가의 저승사자" 등으로 알려진 "칼 아이칸"에 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10년전 KT&G습격 사건으로 더 알려진 인물이죠. 그 당시 채 1년도 안 되어 호주머니에 챙겨간 돈만 1500억원이라고 합니다. 칼 아이칸은 세계 시가총액1위 기업 "애플"의 주요주주이자 주 가치를 제고하는 대표적인 행동주의적 투자자이며


여기서 행동주의 투자자(Activist Investor)란 지분을 가진 기업의 경영권에 개입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을 말합니다.


칼아이칸의 생애


칼 아이칸은 1936년 뉴욕 퀸스 펄록카웨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이칸의 아버지 또한 러시아계 유태인이이며, 아이칸의 아버지는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 어머니는 교사였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었던 삼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어려서부터 학업 성적이 뛰어났고 명석했다고 알려진 그는 프린스턴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후 뉴욕대학 의과대학을 중퇴를했습니다.


이때 아이칸은 매일같이 시체를 대하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2년 만에 의학 대학원을 그만둔 아이칸은 군에 입대하고, 제대후 1961년 뉴욕의 드레퓌스 앤드 컴퍼니(Dreyfus & Company)에 견습 주식거래인으로 입사하면서 월스트리트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때 소규모 회사를 인수하게 되면서 M&A의 참맛을 알게되죠.


그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85년 대형 항공사인 TWA에 대한 적대적 M&A에 성공하면서 부터입니다. 아이칸은 이때 그의 유명한 협상 노하우를 발휘한고, 전날 잠을 충분히 자고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들어 오랫동안 협상을 끌고 가면서 상대가 녹초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죠

그는 이 회사를 인수해 1993년까지 직접 운영했습니다. 이렇게 고위험군 회사채를 대거 사들인 후 구조조정을 통해 빚잔치를 한후 비싼값에 되팔아 시세 차익을 남긴 아이칸은 돈앞에서는 냉혈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며 기업들은 수시로 그의 협박과 법적 분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칼아이칸의 냉혹함 


칼아이칸이 자주 쓰는 말로 "월 스트리트에서 친구를 원한다면 차라리 개나 한 마리 사라!"

농담처럼 들리지만 칼아이칸의 냉혹함과 아무도 믿을수 없는 월가의 현실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활동하며 모은돈이 무려 140억달러나 된다고 합니다.



매일 죽을 때까지 6억을 버는 남자


인터넷매체 셀러브리티넷워스닷컴에 따르면,  80세 생일을 맞은 아이칸은 당일에만 58만1793달러(약 7억원)를 벌었다고 합니다.  생일파티를 위해 자신의 친구인 세계적인 투자 거물들을 뉴욕 맨해탄 매스트로 스테이크하우스로 불러모은 아이칸은 이날 참석한 인사 중에는 사모펀드 업계 대부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과 ‘정크본드(투자부적격 등급 채권)의 황제’ 레온 블랙(Leon Black) 등 억만장자들도 포함됐다. 


하지만 참석자들 중 아이칸의 하루 평균 수익을 능가하는 이는 없었다고 합니다. 올해 64세인 레온 블랙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는 하루 19만달러(2억2900만원)를 벌었고, 밀켄(69)은 9만8313달러(1억1850만원)의 소득을 올렸을 뿐이라고 합니다.




탐욕의 기부왕


이렇게 탐욕스러운 이미지의 아이칸도 어울리지 않게 꾸준히 기부를 실천해온 기부왕입니다.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자"며 주도하고 있는 '기부서약' 캠페인에 2011년 아이칸도 동참 했으며 그 캠페인에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도 동참하고 있다고 합니다.



뉴욕시의 종합경기장 '아이칸 스타디움'은 그가 1,000만 달러를 기부해 지은 경기장으로 개인이 뉴욕의 공원 시설에 기부한 것 중 최고액이다. 프린스턴대학에 자신의 이름을 딴 실험실이 있을 정도로 모교에도 상당액을 기부했고, 미혼모와 노숙인을 위한 보호시설도 그의 기부를 받아 운영 중이다. 2001년에는 스타라이트 어린이 재단으로부터 '올해의 수호천사'에 선정되는 등 기부 관련 상도 여러 개 받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