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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밀리터리 스토리

총 한번 안쏘고 미국 최고무공훈장을 받은 남자의 정체

메달오브아너는 미국에서 군인에게 수여하는 최상위 훈장이며, 미 의회가 훈장 수훈을 결정하기 때문에 의회명예훈장이라고 부릅니다. 수여자격은 미군 내의 각군 소속이면 되고, 미국의 적과 전투중에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자신의 직무 범위를 넘어 눈에 띄는 용맹을 보여준 군인이라 판단될 때 수여하는 훈장입니다.


이런 미국 최고무공훈장의 혜택은 여기서 참고 이 의회명예훈장을 총 한발 안쏴보고 수여받은 군인이 있었는데, 심지어 이 군인은 '양심적 집총거부자'였죠.


미국 개신교 중 재림교회라는 교파가 있고 데스몬드 도스 라는 청년은 재림교회의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일본의 진주만공격으로 데스몬드 도스에게도 1942년에 징집명령이 떨어졌고, 그는 육군에 입대했습니다.


하지만 살인을 금지한 계명과 안식일에는 일상적인 활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계율을 지키기 위해 집총을 거부하고 의무병과에 자원하였죠. (당시 미군 의무병은 무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훈련소에서 첫 일요일에 있던 지휘검열을 교회가야 한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등 부대 내 최고의 문제덩어리로 떠올랐고, 이 때문에 훈련 교관들을 포함해서 여러 사람에게 꽤 갈굼을 당했습니다.


또한 종교적 이유로 전투병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지휘관들의 말도 끝까지 거부했고, 토요일은 안식일 이라는 이유로 어떤 지시에도 따르지 않았죠. (응급 환자를 돌보는 일만은 안식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만은 했다고 합니다.)


이후 데드몬드 도스는 육군 제 77사단으로 태평양 전선에 배치되었고 의무병으로써 성실하게 자기 임무를 수행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45년 1월에 벌어진 코드네임 아이스버그작전, 즉 오키나와 상륙작전에 도스의 부대도 출전하게 되었죠. (2차대전중 가장 많은 미군이 희생된 전투중 하나, 사망자만 12,500명)


데드몬드 도스가 소속된 미 육군 77사단 307보병연대 제1대대는 1945년 4월 29일 오키나와의 Orasoo-Mura근처에 있는 360미터 높이의 언덕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고 진격했지만 도착하자마자 매복한 일본군의 기관총 공격으로 100여명이 순식간에 쓰러지고 겨우 살아남은 55 명이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대대의 유일한 의무병이던 도스는 일본군 기관총의 십자포화 속에서 쓰러진 동료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살아있는지 확인하고, 살아있는 동료가 있으면 들쳐업고 둘러메고 한명씩 아군지역으로 들어 나르기 시작했죠.


그렇게 그는 일본군이 던지는 수류탄 파편을 맞으며 아군 병사들을 구해내고 귀환하였고, 귀환할 당시 도스는 팔에 복합골절상에 다리에는 수류탄 파편 여러개를 맞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 공로로 1945년 10월 12일 데스몬드 도스 일병은 미군 최고 훈장인 의회명예훈장을 수여받게 되었고, 이는 미군 역사상 비전투병과 군인으로는 유일한 명예훈장 수여자라는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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